등산은 핑계일 뿐, 도봉산 도토리마을

 

 낮은 여전히 덥지만, 아침저녁으로는 찬바람이 불어 완연한 가을 날씨를 느낄 수 있는 요즘. 파란 하늘을 보고 있자니 어디로든 떠나야 할 것만 같은 생각에, 여름 동안 쉬었던 산행을 재개하기로 했다.

 

그래서 결정한 장소는 서울 4대 명산으로 꼽히는 도봉산. 북한산 자락이라 험준한만큼 산세가 아름다워 수많은 등산객들의 사랑을 받는 곳이다.

 

 

 사실 등린이인 나로서는 동네 뒷산 정도가 딱 좋은 체력이지만, 여행 가는 기분을 내고 싶은 마음에 내린 무모한 결정.

 

하지만 등산로 입구에서부터 그 결정이 옳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김밥집은 물론 바베큐장, 각종 전집, 포장마차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걸 보았으니 말이다.

 

 

 먹고 싶은 메뉴가 너무 많아 고민이지만, 산에 오르기도 전에 발목이 잡힐 듯하여 가볍게 김밥만 먹고 시작된 고난의 행군.

 

숨은 가빠오고 다리는 끊어질 것 같지만 머릿속엔 오로지 한 생각뿐이다. 뭐 먹지.

 

 

 포장마차는 분위기가 좋은 대신 메뉴가 식상하고, 막걸리에 전도 좋은 선택이지만 뭔가 2프로 부족한 느낌이다. 

 

결국 하산 후에도 마음을 정하지 못한 채 방황하다 나의 눈에 들어온 간판, 도토리 전문음식점 도봉산 도토리 마을. 가게 이름도 메뉴도 모두 합격!

 

 

 동네에서는 이미 유명한 맛집인지 등산객보다는 가족 단위의 손님들이 더 많은 점도 좋다. 덕분에 점심이 한참 지난 시간이었지만 10분가량 기다린 후에야 빈자리가 나긴 했지만. 

 

서둘러 앉아 메뉴판을 살피니, 도토리로 할 수 있는 음식은 다 하시는 듯.

 

 

 묵 무침은 기본이요, 묵밥, 도토리 밀쌈, 곰탕 등 식사 메뉴와 보쌈, 홍어무침, 만두전골 같은 안주류까지. 메뉴판을 보는 눈이 다 배부를 지경이다.

 

고민 끝에 내가 선택한 메뉴는 도토리 정식. 이것저것 다 먹어보고 싶은 나에게 안성맞춤인 메뉴다.

 

 

 

 1인 16,000원의 가격이면 점심 치고 저렴한 편은 아니지만, 반찬을 제외하고라도 나오는 메뉴만 열 가지에 달해 나의 취향저격인 셈.

 

주문을 마치고 나니, 아삭한 열무 김치와 잘 익은 깍두기를 필두로 줄줄이 음식이 나오기 시작한다.

 

 

 처음 나온 메뉴는 시원한 냉육수에 도토리묵과 각종 야채가 들어간 묵사발과 쫄깃한 도토리전.

 

시원한 국물부터 들이킨 후 묵을 먹어보니, 역시 맛이 다르다. 부드러우면서도 탄력이 있어 씹는 맛이 좋고 심심한 육수에 은은한 도토리 향이 감돌아 고소하다.

 

 

 도토리 전도 메밀전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 메밀전보다 훨씬 담백하면서 쫀쫀한 질감은 살아 있어, 다른 음식을 싸 먹어도 맛있지만 단독으로 먹어도 다른 메뉴에 절대 밀리지 않는다.

 

 

 하지만 한가롭게 즐길 새가 없다. 먹고 있는 음식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 이어지는 음식 러시. 

 

사진도 찍어야 하고 음식 맛도 봐야 하는데 연달아 뉴페이스가 등장하니 덩달아 마음까지 급해진다. 

 

 

 두번째로 나온 그룹은, 도토리로 만든 면을 매콤하게 무친 도토리 비빔국수와 새콤달콤한 양념이 매력적인 묵무침, 도토리전에 야채를 소복이 넣고 말아 낸 도토리 밀쌈 되시겠다.

 

마침 자극적인 음식이 필요하던 참이었는데 좋구만.

 

 

 묵무침과 비빔국수야 내가 원체 좋아하는 음식들인지라, 특별히 새로운 느낌까진 아닌데 요 밀쌈이 예술이다.

 

구절판의 고소한 맛과 월남쌈의 상큼한 맛을 합쳐 놓은 맛이랄까. 특별한 간이 되거나 찍어먹는 소스가 있는 게 아닌데도 어디서 이런 맛이 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그리고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모든 음식을 나올 차례에 즉시 만들어 준다는 점이다. 아마 음식 맛을 살려주는 가장 주된 원인이 아닐까.

 

따뜻해야 할 음식은 따뜻하고, 차가워야 할 음식은 차갑다. 손님도 많고 주말이라 미리 만들어 놓을 법도 한데 말이지.

 

 

 음식마다 깃든 정성에 감탄하고 있으면 또다시 줄 서 들어오는 요리들. 

 

나오는 순서에도 고민의 흔적이 보여 좋다. 처음은 가볍고 심심한 메뉴로 시작해 매콤 달콤으로 넘어갔다가 만두나 보쌈 같은 무거운 음식 순으로, 균형이 매우 좋달까.

 

 

 이렇게 여러 메뉴가 나오는 경우는, 한꺼번에 나와버리면 좋아하는 음식 몇 개만 먹다 금세 배가 부르기 십상인데 적절한 양과 시간을 조절해가면서 주니 하나하나 충분히 맛을 느낄 시간이 많아 좋다.

 

 

 마요네즈로 맛있게 버무려진 샐러드와, 속이 꽉 찬 고기만두, 부드럽게 잘 삶아진 수육, 그리고 대망을 장식할 곰탕과 묵 비빔밥이 오늘의 마지막 그룹이다.

 

갑자기 웬 샐러드지? 싶었는데 깨알같이 도토리로 만든 수제비가 들어가 있다. 쫀득쫀득 씹히는 질감을 가진 수제비와 아삭아삭한 야채에 고소한 마요네즈라니. 이 어찌 맛이 없겠는가.

 

 

 음식이 다 맛있긴 했지만, 고기반찬이 없어 아쉬웠던 찰나에 나온 수육은 나의 소중한 단백질원이 되어주시고, 배가 충분히 불러 먹지 못할 것이라 예상했던 비빔밥까지 싹 비우고서야 끝이 났다.

 

 

 평소보다 많은 양을 먹었지만, 오히려 속이 편해지는 건강식을 먹은 듯해 기분이 더욱 좋았던 날.

 

앞으로 도봉산을 (먹으러) 자주 와야겠다는 생각이 든 하루였다.

▣ 찾아가는 방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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