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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자꾸 당기는 맛, 수원 한봉석할머니 순두부 본문

가성비 갑! 싸고 맛있는 국내 식당 파헤치기/국내 유명 맛집

나이가 들수록 자꾸 당기는 맛, 수원 한봉석할머니 순두부

강마 2020. 11. 30. 08:35

 

 음주와 해장. 하나의 완성된 문장같이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어렸을 때는 해장하면 짬뽕이나 라면같이 자극적인 음식을 선호했는데, 어찌 나이가 들다 보니 그런 음식들은 먹고 나서 속이 편치가 않더라.

 

 

 그래서 최근에는 타지를 방문했을 때 그 지역의 로컬 백반집을 찾아다니는 편. 

 

이 날도 수 많은 메뉴 사이 숙고를 거듭하다 거부할 수 없는 이름의 간판을 발견했다.

 

 

 한봉석할머니순두부.

 

보통 가게이름에 주인장 이름이 들어가는 것도 무언가 신뢰감을 주는데 거기다 할머니까지 붙었으니 어찌 거부하겠는가. 마침 뜨끈한 국물이 생각나던 차 망설임 없이 가게로 들어섰다.

 

 

 11시가 막 넘은 시간이라 아직 밑반찬 만드시는 중인지 가게 안에 고소한 기름 냄새가 가득하다. 나대는 위장을 진정시키고 메뉴판을 훑어보니 순두부는 기본이요 청국장부터 안주류까지 메뉴가 다양하다.

 

 

 그래도 순두부집이니 순두부를 먹어야 하는데, 하얀 걸 먹자니 빨간 게 아쉽고 빨간 것만 시키자니 하얀 게 아쉽다. 

 

원래 모를 때는 물어보는게 상책. 1인분씩 가능한지 사장님께 여쭤보니 원래 그렇게들 가장 많이 주문한다며 바로 접수 완료.

 

 

 주방에서 울려퍼지는 맛있는 소리를 들으며 기다리고 있자니 처음 모습을 드러낸 건 숭늉이다. 물을 안 주시길래 물은 셀프인가? 바빠서 그러시나 싶었는데 물 대신 숭늉이라니.

 

 

 이 얼마나 오랜만의 숭늉인지. 예전에는 백반집에 가면 숭늉이나 누룽지가 서비스처럼 나오는 곳들이 많았는데 말이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도 괜스레 반가운 걸 보니 나이가 들긴 했나 보다. 허허.

 

 

 구수하고 뜨끈한 숭늉을 호로록 마시고 있으니 벌써 해장이 완료된 기분이다. 

 

하지만 숭늉은 시작에 불과했다는 걸 커다란 상에 꽉꽉 채워지는 그릇수가 말해준다.

 

 

 

 비빔밥용 나물 6종 세트와 두부부침, 계란말이, 묵무침, 무 생채, 연근 무침, 버섯 탕수 등등등. 

 

다들 갓 빚어낸 것처럼 따끈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빛깔이 좋아 어느 것 하나 치울 게 없다. 이렇게 만들려면 시간과 정성이 상당히 들어갈 텐데.

 

 

 모든 반찬이 리필 가능하기 때문에, 첫 상은 남지 않게 적당량 주는 것도 마음에 든다. 힘들게 만들었는데 못 먹고 버려진다고 생각하면 그 얼마나 속상한 일이겠는가.

 

 

 이제 눈으로 충분히 즐겼으니 입으로 느껴볼 차례. 

 

가장 궁금했던 두부 구이부터 먹어보니 찌개는 안 먹어봐도 그 맛이 상상이 가 절로 신이 난다. 손두부만의 농밀한 질감과 고소함에 입 안 가득 콩 특유의 향이 퍼져나간다.  

 

 

 그리고 이 집은 특이하게도 보리밥이 대접 채 나와 비빔밥과 순두부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 물론 취향에 따라 따로 먹는 걸 선호할 수도 있지만 고추장과 대접을 보면 일단 비벼야 하는 게 우리 민족 아닌가.

 

 

 열심히 반찬을 오물거리며 비빔밥을 만들고 있으면 의문의 뚝배기 4개가 올려진다. 빨강이 하양이 순두부 2개인건 알겠는데 나머지는 뭐지?

 

 

 된장찌개의 탈을 쓴 강된장과 손두부의 증거 비지찌개가 정식을 완성하는 히든 메뉴였던 셈. 국물 없이 자작하게 조려 낸 된장찌개를 비빔밥에 한 숟갈 넣어 먹어보라는 조언도 해주신다.

 

그럼 일단 맑은 순두부부터 찐한 순두부찌개 순으로 차례대로 맛을 음미해보도록 할까.

 

 

 너무 뽀얀색이라 싱겁진 않을까 걱정했던 하양이는 꼬숩고 은은한 콩의 단맛이 매력이라 다른 음식을 먹다 중간에 입을 정화시켜주는 느낌.

 

비지가 담뿍 들어간 비지찌개는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뚝배기 그대로 밥을 비벼먹으면 톡톡 터지는 비지가 보리밥과 기가 막히게 어울린다.

 

 

 사장님 말씀대로 된장이는 국물용이라기보단 비빔용. 그냥 먹기는 짠 편이나 비빔밥에 들어가면 밥을 촉촉이 적셔줌과 동시에 고추장을 도와 밥에 감칠맛이 돌게 한다.

 

빨강이 찌개는 말해 뭐하나. 정말 맛있고 얼큰한 순두부찌개의 정석과도 같은 맛이다.

 

 

 밥 한 그릇은 각종 나물을 넣고 슥슥 비벼 먹어치우고 나머지 한 그릇은 비지찌개와 순두부에 말아 나머지 밑반찬들과 먹으면 어느 순간 빈 그릇들이 하나둘씩 쌓이기 시작한다.

 

이 정도쯤 되면 정식이 아니라 한식뷔페급이라 봐도 무방할 터.

 

 

 해장하러 갔다가 고기 한점 없어도 대접받고 온 기분이 들었던 날.

 

나이가 들어 좋은 점 중 하나는, 살아온 만큼 쌓인 노하우와 연륜으로 더 다양한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것 아닐까라고 애써 위로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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