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시간이 아깝지 않아, 행운동 조개

 

 유동인구가 많아서인지, 서울대입구역 인근은 천하제일음식대회가 열려도 좋을 만큼 식당들이 많다.

 

젊은 친구들이 사랑하는 샤로수길은 말할 것도 없고, 관악구청과 지하철역 사이로도 셀 수 없는 가게들이 줄을 서 있으니 말이다.

 

 

 재밌는 점은 위치에 따라 식당 색깔이 제법 다르다는 것. 

 

쌀국수, 파스타, 스테이크, 초밥같은 다국적 메뉴는 샤로수길에서 주로 보이고, 족발, 삼겹살, 순댓국 같은 한식이 주인 메뉴들은 그 외의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내게는 소주를 파냐 그렇지 않느냐가 식당 선택의 중요한 지표인지라 샤로수길과는 친하지 않지만, 서울대입구역 근처는 굉장히 자주 가는 편.

 

하루도 해장국을 먹기 위해 신나게 걸어가는데, 어느 좁은 골목 안에 사람이 가득 들어차 있다.

 

 

 여기 뭐지? 흘러넘치는 냄새와 간판으로 짐작컨대 조개구이 집인 모양인데, 서울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가게는 오랜만인 듯. 

 

신기함에 동네 주민인 호적 메이트에게 물어보니, 원래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유투버 누군가가 다녀와서 더 유명해졌단다.

 

 

 

 본인도 와 보고 싶었으나 매일 저녁 저렇게 줄을 서대니 가 볼 엄두가 나질 않았다나. 6시에 도착해도 기본 1시간 이상은 기다려야 하는 모양.

 

하지만 죽어도 줄 서는 건 싫은 우리기에, 날을 잡아 이른 시간에 도전을 해보기로 하고 다음을 기약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약속한 그 날. 다른 일정도 미루고 가게 앞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4시 30분이다.

 

다행히 가게 안은 절반 이상은 비어있는 상태. 자리에 앉아 메뉴부터 살펴본다. 가리비구이가 유명하다고는 하는데, 수조 안에 꽉꽉 채워져 있는 많은 종류의 조개들을 보니 가리비만 먹긴 아쉽달까.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도 포기할 수 없기에, 내가 주문한 메뉴는 조개찜 소. 찜은 시간이 다소 걸린다고 알려주고 기본 안주인 옥수수와 번데기를 가져다준다.

 

언제 먹어도 맛있는 두 아이들이기에, 숟갈로 푹푹 퍼 먹어가며 10분 정도 기다렸을까. 저 멀리서 거대한 탑이 다가온다.

 

 

 보자마자 입이 떡 벌어지는 비주얼. 조개를 익히는 시간보다 쌓는 시간이 더 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어찌나 밑에서부터 차곡차곡 잘 쌓았는지, 사장님이 어렸을 적 레고 좀 하셨나 보다.

 

이게 32,000원이 맞긴 한 걸까. 잘못 나온 건 아닐까. 양이 너무 많은데? 별 쓸데없는 걱정을 하며 탑 위쪽부터 공략을 해보기로 한다.

 

 

 야들야들 잘 익은 낙지와 새우를 시작으로 가리비 군단과 키조개 장군, 소라를 지나 동죽, 백합, 이름 모를 조개 병사들이, 최하단에는 홍합과 바지락이 냄비 가득 깔려 있다.

 

갯벌 생태계를 구현화시킨 현대 미술인 건가.

 

 

 보통 조개구이 집에 가면, 비싼 거는 몇 개 안 주고 싸고 자잘 자잘한 조개들로만 채워주는 경우가 많은데, 여긴 비싸고 싸고 간에 다 많이 준다.

 

이 정도면 한 시간 기다릴 만도 하겠다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테이블 회전율이 좋아서인지 조개 상태도 하나같이 싱싱해서 더욱 마음에 든다.

 

특히 조개요리는 단조로운 맛에 금방 물리기도 하고 과하게 익히면 질겨지기 때문에 끝까지 맛있게 먹기 힘든데, 종류가 워낙 다양하다 보니 골라먹는 재미도 있고 말이지.

 

 

 때 아닌 조개와의 사투를 해가며 껍데기만 4통을 치웠을 때쯤, 드러난 바닥. 얼른 국물을 먹어보니 이거 완전 진국이다.

 

여긴 무조건 칼국수 사리지. 2천 원만 추가하면 두 가지 요리를 먹을 수 있는 셈 아닌가. 사리도 양이 어찌 많은지 한 번에 들어가질 않아 두 번에 나눠 끓여야 할 정도긴 했지만.

 

 

 셋이서 모든 조개들과 칼국수까지 맛있게 먹어치우고 나서야 밖을 보니 대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기다리는 이들을 위해 빠른 후퇴를 하기로 결정하고 가게를 나서는 길. 여길 알고도 비싼 돈 주고, 서해안 해수욕장에서 조개구이를 사 먹으면 바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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